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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북촌 나들이

by yoon7story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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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 이야기.

주말 나들이 하기, 좋은 산책하기 좋은 코스의 북촌 한옥마을입니다. 제가 간날은 주말이였고 날씨가 몹시 맑아 한낮의 뜨거움을 한껏 느껴야만 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도 여러 갈래 길이 있기에 매번 가던 한옥마을이 아닌 계동의 한적한 북촌으로 발걸음 해보았습니다. 

 

 

 

붉은 재 한옥길.

정독도서관 > 북촌전망대>북촌생활사 박물관> 북촌한옥문화원> 안국동 윤보선가.

북촌.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한옥마을이라 부르는 이곳은 조정에 자주 드나들어야 하는 조선시대 고위 관직에 있던 사대부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몰락하면서 북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규모의 집이 헐리고 대신 소규모 근대식 한옥이 많이 들어섰다. 지금 볼 수 있는 한옥은 대부분 이때 지어진 것이지만, 아직까지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집이 간혹 남아 있어 그때의 북촌을 짐작케 한다. 현재는 사대부의 우아한 삶과 기와지붕의 아름다운 곡선이 고즈넉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다. 조용히 힘을 빼고 천천히 타박타박 걸으면서 그 시대의 여유로움과 우아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도보 코스다. 

 

예전에 가끔 가던 북촌 한옥마을은 몹시 붐비고 사진 찍기도 힘들었는데 계동쪽은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은 한적한 모습이였습니다. 

 

 

 

한옥으로 지어진 카페와 음식점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적해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을것 같습니다. 

이제 발거음 향하기에 휴식은 다음으로 미뤄 봅니다. 

 

 

 

계동 배렴가옥.

지정번호 : 등록문화재 제85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89.

계동 배렴가옥은 화가 제당 배렴(1911-1968)이 1959년부터 생애 말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배렴은 청전 이상범을 사사하고 전통 수묵 산수화의 맥을 이었다고 평해진다. 배렴이 살기 전에는 송석화(1904-1948)가 살았었다. 송석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상민속학자이자 국립민족박물관을 설립한 인물인데, 1937년에 이 집에 입주하면서 이곳을 조선민속학회의 사무실로도 썼다. 이 가옥이 위치한 가회동 일대는 대규모의 토지를 작게 분할한 택지들 위에 도시한옥이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이다. 배렴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보는 튼ㅁ자형 한옥이며, 1936년에 지었다고 추정된다. 지금의 대문 밖 화단에는 본래 사랑채로 이어지는 솟을 문과 사랑마당이 있었으며, 대문을 들어설 때 안채가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아주도록 내외담(사잇담)이 있었다. 이 집은 배렴 사후에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가, 2001년 서울주택도시공사가 매입한 이후 2016년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었다. 현재 계동 배렴가옥은 문화예술공간으로 시민에게 개방되고 있다. 

 

가옥을 들여다 보며 구경할 수 있는 공간도 있기에 들어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역사가 묻어 있는 가옥의 설명을 읽고 있노라니 세월이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이 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골목길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걷다가 주민이 나오기도 하고 좁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적하고 고요하고 너무도 좋았습니다. 고즈넉히 뻗어 있는 골목길의 적막을 즐겨봤습니다. 길과 경계가 없는 집도 있었습니다. 길 따라 쭉 들어가다 보니 집이였습니다. 당황하여 황급히 빠져 나오기도 해봅니다.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건너편에서 불쑥 나오는 사람에 가끔 놀라기도 할 만큼 조용한 골목길이였습니다. 

 

 

 

 

 

석정보름우물.

서울에 상수도 시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 우물은 주된 음수 및 생활용수 공급원이었다. 북촌 주민들의 중요한 음수원이던 석정보름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794년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온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이 지역에서의 짧은 사목기간 동안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래전에는 우물가에 이런 주택가의 풍경은 아니였을듯 합니다. 일반 주택가 바로 앞에 우물이 있는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봅니다. 오랜 역사가 있는 우물에 숙연해졌습니다. 

 

 

 

 

계동 희망길.

작품명 : 꿈의 골목길.

좁은 골목길 안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빽빽이 들어선 집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빛이 모여 여러 이야기를 만드는 골목길을 만들어 보았다. 

 

저 너머에 희망길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벽화에 그려진 그림에 왠지 친숙함이 느껴졌습니다. 그즈넉한 골목길에 우연히 마주한 인사, 정겨웠습니다. 

 

 

 

 

북촌 한옥 역사관.

개장시간 : 10: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점심휴관 : 13:00 ~ 14:00.

상설 프로그램 (코로나 19 거리두기 해제 후 운영)

말을 얻고 집을 잃다.

북촌은 한글이다.

빗소리에도 모국어가 있다.

북촌에서 빗소리는 한글 자음으로 떨어진다.

정세권이 북촌 조선집 지붕에 함석을 붙인 까닭이다.

백 년 동안 빗소리는 처마 끝에서 중얼거린다.

북촌은 한글이다.

익선동 가희동 계동에 조선집을 지어 벌어들인 돈을 정세권은 조선말을 지키고 다듬는 데 바쳤다.

한옥은 한글이다.

북촌에서 눈은 가갸거겨 내린다.

바람도 조선말로 불고

안개 는개도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를 지날 때는

ㅁ자 지붕마다 한글로 배우고 간다.

ㄱ자 담장 옆으로 끼고 가다 ㄹ자로 껶어 오르는 동층계 저편

옛 궁궐 너머로 ㅇ자 달이 떠오는 북촌 골목에는 모국어들이 모여 산다.

북촌은 마디마디 한글이다.

 

경성을 조선집으로 지켜내자, 새로운 조선집 브랜드 건양주택, 북촌 민족문화의 방파제,  전통한옥 집집 도시형한옥,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글들이 빼곡히 벽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북촌 한옥 역사관의 공간은 생각보다 몹시 작았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마음에 드는 글을 적어봤습니다.

북촌으로 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계동(안국역)에서 올라가본 한옥마을이였습니다. 예전에 자주 가던 곳과는 다소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북촌에 가면 전시관, 역사관 등 여러 역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주말 나들이로 한번쯤 가볼만한 코스였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고즈넉한 풍경의 즐거운 시간은 여기까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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